"밑져야 본전"… 형사사건 1심 불복률 66.8%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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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미 기자 sayme@lawtimes.co.kr 입력 : 2015-11-05 오전 11:2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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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형사사건 항소율이 최근 10년새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의 공판중심주의 및 사실심 강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소율이 고공행진을 거듭하자 법조계에서는 사법자원의 효율적인 운용을 위해서는 약식사건에서의 불이익변경금지원칙 폐지 등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법원행정처가 최근 발간한 '2015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1심 형사합의부가 판결한 2만174건 가운데 66.8%에 해당하는 1만3476건이 항소돼 상급심에서 다시 재판한 것으로 나타났다. 62.3%의 항소율을 기록한 2013년보다 4.5%P 증가한 수치로 3건중 2건 이상이 항소로 이어지는 셈이다. 1심 형사단독 사건의 항소율도 36%를 기록해 2013년 31.6%보다 4.4%p 증가했다. 형사 1심 합의사건, 단독사건에 대한 항소율 모두 2005년 이후 최고치다.
심각한 것은 최근 들어 항소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1심 형사사건에 대한 항소율은 2010년 합의사건 62.8%, 단독사건 31.1%를 기록했다가 2011년 66.1%, 29.6%, 2012년 51.1%, 27%로 등락을 거듭하다 2013년 62.3%, 31.6%로 상승세로 돌아선 이후 지난해에는 66.8%, 36%를 각각 기록하며 3년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항소심 형사재판 결과에도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하는 비율도 30%를 넘고 있다. 지난해 2심 결과에 불복해 피고인 또는 검사가 상고한 사건의 비율을 보면 지방법원 항소부 사건의 경우 33.5%, 고등법원 사건은 38%에 달한다.
2심 불복도 지법 항소부 33.5%, 고법 항소부 38%
"불이익변경금지 원칙 도입으로 남상소 초래" 지적
'미결구금일수 형기 전부 산입' 헌재 결정이 원인 지목도
이처럼 상소가 범람하는 이유는 아직도 '밑져야 본전'이라는 식의 상소가 많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1995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약식사건에도 불이익변경금지의 원칙이 도입되면서 남상소를 불러왔다는 지적이다. 약식명령에 대해 피고인이 정식재판을 청구해도 약식명령의 형보다 중한 형을 선고받지 않게 되면서 피고인들이 벌금액 감면이나 벌금액 납부 지연을 위해 정식재판을 청구하는 것도 모자라 항소와 상고를 거듭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이를 폐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지만 국회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대법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과거에는 약식명령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한 피고인이 법정구속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불이익변경금지 원칙이 약식사건에까지 적용되면서 굳이 법원의 약식명령에 불복하지 않아도 되는 피고인들까지 밑져야 본전 식으로 재판을 청구하고 있다"며 "국민의 재판 받을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한정된 사법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해 모두가 나눠 쓸 수 있도록 관련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법조계는 헌법재판소가 지난 2009년 6월 '미결구금일수를 형기에 전부 산입해야 한다'며 형법 제57조 1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것도 상소 급증을 불러온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과거 재판부의 재량에 따라 미결구금일수의 일부를 형기에 산입해주지 않을 때에는 구금일수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한 피고인들이 남상소를 자제했지만 이제는 손해 볼 일이 없어 앞다퉈 상소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미결수와 기결수에 대한 교정기관의 처우가 달라 피고인으로서는 실형 예상이 불가피할 경우 최대한 미결수 신분을 장기간 유지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점도 높은 상소율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결수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받기 때문에 기결수와 달리 변호인의 접견과 횟수 등에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는다. 미결수는 또 거주지와 가까운 구치소에 수감된다. 교도소 사정에 따라 주거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역에 수감될 수 있는 기결수와는 사정이 '하늘과 땅' 차이인 셈이다.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는 "피고인들은 자신의 형기 동안 기결수보다 미결수 신분을 최대한 오래 유지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상소를 거듭하기 마련"이라며 "관련 제도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부장판사는 "민사와 달리 형사는 무죄가 선고되면 검사가 항소하고 실형이 선고되면 피고인이 기계적으로 항소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이를 단기간 내에 계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 제도 시행으로 변호사 공급이 늘면서 법률서비스에 대한 접근이 상대적으로 용이해지고, 성폭력 등 일부 범죄에 규정됐던 친고죄 조항이 폐지되면서 처벌 건수가 늘어난 것도 형사사건 상고를 증가시긴 원인으로 손꼽히고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지난해 7월부터 폭력사범에 대한 벌금 구형 기준이 배로 상향됐고 전반적으로 법원이 양형기준에 따라 엄중히 선고하고 있어 항소율이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며 "항소율이 여전히 높다고 사실심 강화 방안이 제 몫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7월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1심 양형 파기를 자제하라고 강조한 바 있어 앞으로 형사사건에서 1심 의견을 존중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 항소율도 점차 낮아질 것"이라며 "변호인들도 무작정 상소를 부추길 것이 아니라 당사자에게 가장 유리한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